🇹🇼 대만어(타이위), 금지에서 부활까지
대만의 언어가 어떻게 형성되고, 왜 세대마다 사용하는 말이 다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글을 준비했습니다.
한 세대의 기억 속에 남은 ‘대만어(타이어)’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1️⃣ 금지된 언어, 잊히지 않은 기억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대만은 새로운 통치를 맞았다.
중화민국 정부는 섬의 언어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국어정책(國語政策)’을 시행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가 단합’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 정체성을 지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오직 ‘국어(표준 중국어)’만 허용되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대만어를 쓰면 벌금이나 체벌를 받기도 했었다.
모국어를 말하는 일은 곧 ‘부끄러움’이 되었고,
사람들은 서서히 자신의 언어를 숨기기 시작했다.
2️⃣ 언어는 사라지지 않는다
1950~70년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도 대만어는 자취를 감췄다.
방송국은 “국어 프로그램 90% 이상”을 의무화했고,
대만어 노래는 “저급한 문화”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언어는 억압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집 안에서는 여전히 할머니, 어머니가 대만어로 속삭였다.
“밖에서는 하지 마라” 하면서도,
부엌과 식탁에서는 그 언어가 가족의 온기를 지켰다.
그것은 한국의 1970~80년대,
사투리를 숨기고 표준어만 쓰라던 교실 풍경과도 닮아 있다.
3️⃣ 해엄 이후, 다시 살아난 말들
1987년 해엄 이후, 대만 사회는 조금씩 변했다.
학교에서 모국어 수업이 다시 시작되고,
1990년대에는 대만어·객가어·원주민어가 **‘향토어 교육’**으로 부활했다.
지금도 대만의 50~60대는 대만어로 대화한다.
그들에게 대만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억압의 시대를 견뎌낸 기억이며,
세대를 이어주는 정체성의 끈이다.
젊은 세대는 대만어를 잘 모른다.
하지만 시장과 어촌, 그리고 공장 바닥에서는 여전히 대만어가 살아 숨 쉰다.
그 언어에는 ‘사람 냄새’와 ‘시대의 흔적’이 함께 담겨 있다.
4️⃣ 언어는 인간의 역사다
언어는 단지 소리의 체계가 아니다.
그 안에는 권력, 신념,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이 함께 흐른다.
대만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만의 근현대사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인이 일제강점기, 군사정권을 거치며
자신의 말을 지켜온 기억과도 닮아 있다.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역사를 잃는 일이다.
그렇기에 대만어의 부활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 회복되는 과정이다.
5️⃣ 대만에서 통역사를 고용할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
대만에서 사업을 하거나 현지 협력업체와 협의할 때,
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어·한국어가 모두 가능한 통역사를 찾는다.
하지만 여기서 종종 놓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그 통역사가 대만어(타이어)를 이해하느냐는 점이다.
대만에서는 공식 회의나 문서는 대부분 중국어로 진행되지만,
현장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50~60대 이상의 관리자나 기술자는
중국어보다 대만어를 더 자연스럽게 쓴다.
회의 중에는 국어를 쓰더라도,
쉬는 시간의 대화나 진짜 의사결정은 대만어로 오갈 때가 많다.
중국 조선족 출신이나 화교 통역사는 중국어에는 능하지만,
대만어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미묘한 분위기, 웃음 뒤의 속뜻,
심지어 협상 중의 “진짜 말”을 놓치기 쉽다.
따라서 대만에서 통역사를 고용할 때는,
그 사람이 단순히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가보다
‘문화와 지역 감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령별 대만어 사용 비율
6️⃣ 결론 ―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
대만어는 한 세대의 상처와 회복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 언어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단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감정과 기억을 읽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대만에서 일하고, 협상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진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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